예를 들어, 천문도의 하늘과 한양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하늘과 땅의 대칭성과 사신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가?
이런 모습을 상상했을 고대 천문관의 사상적/철학적 배경이 궁금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천문도에 지상의 모습이 그려진 사상적 근거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원전 130년 경의
천인감응설이다 [동중서].
우주라는 물리적 환경과 인간 사이에는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감응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북드라망].
동중서는 유교의 번영과 주류화를 촉진한 사람으로,
유교라는 이름으로
음양오행, 주역의 자연과학적 가치관과
유가의 윤리/정치학을
통합했으며, 이 통합의 결과물 중 하나가 천인감응설이다.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 가면 음양론과
오행론은 기원전 250년 경 추연에 의해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되었다.
점을 치는 주역과
공자의 인의예지는
결이 다른 듯 하지만, 기원전 500~200년에 공자 및 제자들에 의해 유가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고대 사료에서 음양,
오행,
주역의 기원을 따라가 보면 3가지 모두
태호/복희의
하도/팔괘에 이른다 (기원전 2800년 경).
물론 기원전 1000년 이전의 역사는 정확치 않으며, 태호/복희가 전설 속의 인물일 수도 있다.
어쨋든, 하도/팔괘에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이치에 따라 변화·순환한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으며,
고대의 이런 생각이 천인감응설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제부터 위에 열거한 사상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어쩌면 각각의 사상에 대한 지리한 나열이 될 수도 있지만, 이들이 통합 발전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아래 도표는 본 글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동양의 고대 문명
요하 문명 / 홍산 문화: 기원전 4700 ~ 기원전 2900 또는 그 이전부터 요하(강) 근처에서 발달했던 신석기 문화이다.
이곳은 당시 고조선의 강역이며, 이후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으로 문화가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실하].
황하 문명: 기원전 1900년 ~ 기원전 1400년. 하·상·주 나라 중심으로 발전했던 문명으로 춘추전국시대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상나라: 기원전 1700 ~ 기원전 1046. 중국 허난성 은허에서 14만 여 편의 갑골이 발견되며 역사적 실체를 인정 받은 나라이다.
갑골은 상나라 통치자들이 국가 행사나 전쟁‚ 사냥을 하기 전에 거북이 뼈에 불을 붙여 길흉을 점치고 이 결과를 기록한 유물이다.
동양 철학의 시조 복희
복희는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이름일 수 있다. 붉은 악마의 상징인 치우천황보다 앞선
동방 사람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춘추전국시대 이후의 여러 문헌에서 '복희'를 언급한다. 예를 들면,
『계사전』: '옛날의 복희씨 같이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위풍당당하나 잔혹하지 않은 사람만이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는 뜻으로
진시황 같은 놈은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의미이다.'
『사기색은』 「삼황본기」: '태호 복희씨는 동방에서 출생하여 즉위하고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가 되어 최초로 8괘(八卦)를 그렸다'
? 원문을 못 찾음
복희는 동양 철학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하도/팔괘를 그렸다고 전해진다.
이제부터 하도/팔괘를 살펴보며 동양 사상을 이해해 보자.
참고로, '태호'라고도 불리며, 중국 바이두백과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태호(기원전 4354~4293 재위)는 동이부족 및 화하부족의 조상이자 수령으로 동방의 시조신이고,
이는 동방 천제인 청제이다. 또한 대호, 태호로도 쓰는데, 목덕木德으로 왕이 되었으니 이이가 춘왕春皇이다.
한 왕조 이후 그것은 때때로 『초백서』의 창세신인 복희씨와 합병되었다.
복희가 동쪽 사람인 것을 생각하면,
기원전 4700 ~ 기원전 2900 요하 문명 -->
기원전 1700 ~ 기원전 1046 황하 중하류의 상나라 -->
기원전 770 ~ 기원전 221 춘추전국시대로 이어지는 문명의 지리적 이동이 추측된다.
기원전 2000년 이전에는 동이족 중심으로 동양 사상의 뿌리가 만들어졌고,
복희는 이 동방 문화의 전파자일 수 있다.
하도
하도는 기운의 흐름 또는 강에서 나온 도상의 뜻이다. ‘하’는 강을 뜻하며 황하의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서경』에, "복희가 천하를 덕으로 다스리자 용마가 하에서 나왔다. 그 무늬를 본받아서 팔괘를 그렸는데, 이것을 하도라고 했다."
위 말에 따르면 '하도=팔괘'로 생각되지만, 남송 시대 1186년 경 주희가 바둑알을 늘어 놓은 모습의 하도를 그렸고
지금은 이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아래 왼쪽 그림)
하도에서 여러 규칙성을 찾을 수 있다.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과 유사하게 아래와 같이 불러도 좋을 것 같다. ^^
음양의 법칙: 양의 기운 홀수는 흰색으로, 음의 기운 짝수는 검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오행의 법칙: 상하좌우+중앙의 다섯 구역으로 구분된다.
13254를 수화목토금에 대입하면 오행의 연결 고리가 만들어진다. (?? 이 원리는 주역에 설명된 것 같은데, 나중에 찾아 보자)
조화의 법칙:
각 구역은 흰점 검은점이 함께 있으며 대칭되는 구역의 흰점/검은점 숫자의 합은 서로 같다. 위/아래의 흰점=1+7, 검은점=2+6.
또한, 흰점 51379, 검은점 10·2468을 각각 연결하면 태극 모양이 나온다.
남송 주희 『역학계몽』의 하도
태극 모양으로 계절의 시간적 변화 설명
태극·음양 개념의 중요성
동양 사상의 '음양'은 서양 철학의 이분법처럼 별 개의 음과 양으로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다.
음과 양은 함께 존재하고 변화/순환하며 특정 시간에 밖으로 표출되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예를 들면, 위 그림처럼 태극 모양으로 계절의 시간적 변화를 설명할 수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
1년의 기간을 모두 고려하면 계절에는 음과 양이 고르게 존재한다.
하지만, 특정 시각에서는 음과 양의 비율이 다르게 된다.
12월 21일 근처의 동지는 음의 기운이 가장 강할 때이다.
계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음양의 비율이 변화하며,
1년을 주기로 순환한다.
태극 --> 양의 --> 사상 --> 팔괘
후대에 정리된 내용으로 『주역』 계사전의 설명이 팔괘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역(易)에 태극이 있으니 양의를 낳고 양의는 사상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
양의: 두 가지 에너지
양의는 두 개의 에너지 흐름으로 이해하면 편리하다. 서양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고, 자연의 변화를 일으키는 에너지 흐름의 주체로 이해된다.
양의가 음양 이론으로 발전하는 것은 쉽게 눈에 보인다.
다만, 음양이라는 용어는 기원전 300년 경에 나왔다고 한다. 『역경』, 『계사전』, 『논어』, 『맹자』, 『노자』에는 '음양' 용어가 없으며,
천지/건곤/강유/주야/유명 등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보현TV].
사상: 네 가지 모습
사상은 양의에 의해 구체적으로 발현된 자연 현상의 네가지 모습으로 이해가 된다.
사계절, 네 방위, 물질의 네 요소, 사신 등.
팔괘
복희의 천재성은 팔괘를 원형으로 배치한 것이다 [박석재].
주역에서는 팔괘에서 마주보는 두 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자연은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표현했다.
천지정위: 하늘과 땅이 올바른 위치를 잡는다.
산택통기: 산과 못이 서로 통한다.
뇌풍상박: 우뢰와 바람은 서로 부딪친다.
수화불상사: 물과 불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
마주 보는 두 괘 이름의 숫자를 더하면 9가 된다.
하도와 마찬가지로 여러 의미 부여가 가능하며, 천문 관련 일부만 소개하면,
먼저, 옛날에는 전깃불이 없기에 낮 시간대에 남향으로 앉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상태에서 팔괘를 본다고 생각하자.
양효가 많은 따뜻한 위 방향이 남쪽이고, 음효가 많은 추운 아래 방향은 북쪽이다.
왼쪽은 동쪽이며 불의 기운이다. 천문과 연관 지으면 양의 기운인 해는 동쪽에 있다.
오른쪽은 서쪽이며 물의 기운이다. 천문과 연관 지으면 달이 서쪽에 있다.
그래서, 경복궁 근정전의 일월오봉도를 보면 동쪽에 붉은 해가 서쪽에 하얀 달이 있다.
팔괘의 이름 (의미 포함 다시 그리자)
경복궁 근정전의 일월오봉도
하도와 팔괘
하도와 팔괘는
'동양 사상의 근간인 변화하고 순환하는 자연의 모습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매우 훌륭한 도구이다'.
다만, 하도에서 시작된 음양 개념에서 팔괘가 만들어지는 개연성은 있지만, 하도가 팔괘까지 이어지는 직접적인 논리는 잘 모르겠다.
하도의 추상적인 숫자의 논리에서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연(하늘/땅/연못/바람 등)이 나오는 팔괘의 논리를 찾고자 노력했을 것 같다.
참고: 태극기의 유래
팔괘 중 사괘를 이용하여 태극기를 만들었다.
다섯 요소 및 오행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書經)의 '홍범(洪範)‘에 목화수금토 다섯 요소가 열거되어 있다.
홍범은 세상의 큰 규범이라는 뜻으로 상나라의 유민(遺民)인 기자가 주나라 무왕에게 말한 것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청동기 시대인 것을 고려하면 만물을 이루는 구성 요소로 목화수금토 5가지로 생각한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분류이다.
물론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100 여 가지의 원소가 물질의 근본임을 알고 있다.
사상에 한 가지 요소를 더 추가하면 5요소가 된다.
그런데, 사상과 오행을 연결시키는 것은 좀 애매하다. 아마도 자연현상을 넷 또는 다섯 가지로 분류하는 것이 먼저이고,
후대에 사상과 연결지었다고 하는 것이 더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어쨋든, 이런 자연현상의 구분이 넷 보다는 다섯이 더 의미 있다고 판단하여 5요소 및
이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오행의 틀을 갖추어 나갔으리라 추측된다.
이 외에도 많은 것을 넷 또는 다섯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 (아래쪽 '유가의 음양오행 흡수' 참조)
전국시대 제나라의 음양가인 추연(기원전 305~기원전 240)이 오덕종시설에서 오행의 상극설을 주장한 것이 오행의 시초로 보인다.
물론 하도의 오행의 법칙을 인정한다면, 하도가 더 앞선다.
사신 문화의 흔적
먼저 사신에 대해 살펴 보자.
사신의 기원은 동아시아의 여러 문명/문화가 상호보완하며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먼저, 고구려 문화권을 살펴 보자.
4~6세기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아름답고 멋진 사신도 그림이 다수 존재한다. 정말 아름답다.
사신 예술 작품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고분 벽화에 사신도를 그렸다는 것은, 실생활에서도 사신 문화가 깊게 자리 잡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구려 이전의 사료가 없는 것은 아쉽다.
황하 문화권에서는 사신보다는 청룡/백호만 표현하는 ‘이신도二神圖 벽화’가 더 많다 [김일권].
“위진수당 대의 중국 벽화묘 발굴보고서에서 사신도 벽화가 그려져 있다고
서술한 경우가 많은데, 실제 상태를 조사하면 대개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길인 묘도墓道의 양벽 좌우면에다 청룡과 백호만을
그린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의 경우 ‘이신도二神圖 벽화’ 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전 5300년 경으로 추정되는 신석기시대 앙소문화(仰韶文化, 중국 황허 중류 지역에서 존속했던 신석기 문화)
서수파 유적(西水坡遺蹟) 고분도도 용과 호랑이만 표현되어 있다.
사신이 언급된 고문서는 다음과 같다.
『초사(楚辭)』: 초 (楚)나라의 문인 굴원(屈原, 기원전 343?년 ~ 기원전 278?년), 별자리 형태의 사신
『오자병법(吳子兵法)』: 네 방위에 사신이 그려진 깃발을 배치한다고 언급되어 있다.
『사기』 천관서, BC 109~91: 사신의 방향 설명
『이아』: 사신의 색 설명
『예기』: 형태 설명
풍수지리에서의 사신
고대부터 마을/도시를 형성할 때 외부 공격으로부터 방어가 유리한 곳을 찾고,
네 방위의 방어신을 도입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풍수지리 관련 문서? 전국시대? 정립된 시기?
동물뼈점/갑골점
육십사괘 주역을 설명하기에 앞서 갑골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요하에서는 동물뼈점에 사용했던 복골/갑골이 다수 발견된다. 동물뼈점은 상나라 및 한반도로 전해졌으며,
한반도의 경우 통일신라까지 이어졌다 [우실하].
상나라는 갑골점으로 변화되었고, 현재까지 14만 여개의 글자가 있는 갑골이 발견되었다.
최소 14만 번 점을 쳤고 그 통계를 기록했다는 뜻이다. 대단한 빅데이터다. ^^
이러한 기록은 육십사괘 주역을 만드는 참고/실증 자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육십사괘 / 『역경』 / 주역
육십사괘: 팔괘를 2개씩 위아래로 포개면 8X8=64개의 괘가 만들어진다. 복희가 만들었다고도 한다.
『역경』: 주나라 문왕과 그 아들 주공이 육십사괘의 이름(괘사) 및 효에 대한 간단한 설명(효사)을 붙인 것을 가리킨다.
주역: 『역경』과 『역경』을 설명하는 십익-10개의 날개를 함께 가리킨다. 십익은 공맹 시대에 저작되었고, 『계사전』이 가장 유명하다.
육십사괘의 첫 번째 괘 예시
육십사괘점은 갑골점의 대안으로 제안되었을 듯 하다. 훨씬 편리하다. 산통에서 괘를 몇 번 뽑기만 하면 된다.
고대인의 '점'에 대한 통찰, 자연과 연결된 인간
무작위로 뽑은 괘 또는 뼈를 태운 모양이 어떻게 인간/자연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점을 치고 이것을 믿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으리라.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따라서, 인간도 자연 법칙을 따른다.
모든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한다.
따라서, 인간과 산통/괘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무작위가 아닌) 그 순간 가장 적절한 괘가 뽑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일원론적인 생각이 모여 음양오행, 천인감응설로 이어졌으리라 생각된다.
참고로, 본 글에서 다루지 않는 베다의 범아일여, 도가의 도덕일치,
불교의 일체유심조, 칸트의 비판철학 모두 일원론에 기반한다 [채사장].
21세기 우리는, 현대과학은
우리는 서양 철학/과학의 이원론에 익숙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통/괘는 (인간과 별개의) 독립적인 존재이고,
무작위로 뽑은 괘는 인간 또는 다른 자연 현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자신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여기에 대해 선뜻 답하지 못한다.
자연과 우주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과학 논문 400년 지식이 최소 13,800,000,000년의 우주에 대해 왈가왈부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먼 훗날, '우주란 무엇인가' 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제목의 명쾌한 과학 논문이 나온다면,
이 질문에 대해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동양 사상 요약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고대 동양 철학의 기반은 모두 다져졌다.
만물은 변화·순환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따라서, 인간도 자연 법칙을 따른다.
만물의 변화·순환을 설명하고 예측하기 위해 음양오행, 팔괘, 육십시괘를 만들었다.
이제부터 춘추전국, 진한 시대를 거치며, 음양오행 및 유가 철학이 통합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유가의 『역경』 흡수, 주역으로 발전
유가: 지켜야 할 인륜의 명분(名分)에 대한 가르침, '인의예지' 사상을 윤리학/정치학으로 확장 발전시킴
점치는 책인 『역경』은 초기 유가의 윤리학/정치학과는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그런데, 공자가 『역경』의 효용성을 알아 봤다. 아래는 『새벽에 혼자 읽은 주역인문학』 본문 중 일부이다.
"공자는 주역을 통해 우주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깨달았고, 또한 그것으로 사회를 깨우치게 하여 세상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다."
"주역은 만물의 뜻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인간이 주역을 공부하면 크게 발전하게 된다. ...
우리는 만물의 뜻을 공부해 커다란 뜻을 갖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추연의 음양오행 통합 (BC 250년 경)
추연 (BC 305~240): 제자백가 중 음양가의 대표 인물.
음양가: 오행사상과 음양이원론을 결합하여 음양오행사상을 구축.
오덕종시설: 왕조의 교체를 오행의 상승을 통해 설명. 예, 상왕조는 금덕이며, 금을 이기는 화덕 주왕조가 일어남 (요즘 말로 상극 관계이다)
아직 오행의 상생 관계는 안 나왔다(?)
유가의 국교화
진나라: 법가 채택, 지나친 통제/형벌로 백성의 고통이 큼. 반대 세력이 많이 생김.
한나라 초기: 황로법. 무위자연. 오랜 전쟁으로 지친 민심을 달램.
한무제/동중서: 유가를 국교화함. 백성들의 자율적 규율 강조.
동중서: 유가의 음양오행 흡수
동중서 (BC 176~104): '천.지.양.음.목.화.토.금.수 아홉과 사람, 10 이란 것은 천의 수가 완성된 것이다.'
천지와 인간 사이에 음양오행을 넣어, 기존 유가 사상에 음양오행을 통합했다.
자연스럽게 하늘과 자연과 사람은 하나로 통한다는 천인감응설로 발전한다.
복희의 하도에서 시작된 변화와 순환 사상의 집대성으로 생각된다.
오행으로 자연의 이치 뿐 아니라, 사회적 질서도 규율하려고 했다.
인의예지+'신'을 추가하여 오행에 접목함.
오행의 상생설도 도입. 수목화토금의 순서로 생한다. 이전까지는 오덕종시설의 상극설만 있었다.
행성의 이름도 우리가 아는 수금화목토로 바뀜.
오행으로 구분되는 것들을 나열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천인감응설과 천문
천인감응설: 하늘과 사람은 하나로 통한다. BC 100년대에 갑자기 생겨난 이론이 아니라,
고래로부터 널리 퍼져 있던 생각이 이론으로 정리된 것으로 사료된다.
천인감응설과 함께, 인간이나 위정자가 악한 행위를 하면 자연이 재앙이나 이변을 가져온다는 재이설(災異說)도 생겨났다.
이것은 전제군주를 견제하는 장치로 쓰였을 것이다.
오행성의 움직임, 일식, 월식, 혜성 등의 천문 현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기록으로 남기게 된다.
따라서, 하늘을 표현하는 천문도에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넣고,
하늘의 음양오행인 해와 달 및 오행성의 움직임을 열심히 관측했을 것이다.
참고로, 전체 하늘에 대한 천문도는 3세기부터 제작되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도는
1247년 남송의 순우천문도와 1395년 조선의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있다.
다시 한 번 결론
복희의 하도/팔괘: 변화하고, 순환하며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모습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훌륭한 도구이다.
갑골점, 주역점 등 점술 문화의 기반 사상은 일원론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모든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점의 결과가 의미가 있다.
아마도, 천문도는 고대의 일원론적인 생각을 반영하여 지상의 모습을 닯아 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위와 같은 고대 사상을 배경으로 춘추전국시대~진한 시대를 거치며,
유교라는 이름으로 주역/유가/음양오행 사상이 통합되었고,
하늘과 자연과 사람은 하나로 통한다는 천인감응설도 제안되었다.
제언
음양오행, 주역, 사신 등에 대해 '동양 사상'이란 수식어를 사용하기 바란다.
아쉽게도 지금까지는 많은 책과 문서에서 '중국의 음양오행'처럼 쓰여져 있다. 이것은 틀린 표현이다.
수천 년 전부터 동아시아 사람들이 함께 사유하며 정립했고, 동아시아인 모두에게 면면히 이어져 온 문화이다.
당연히 동양 문화/사상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다.
만약, 기원전 500년 춘추전국시대 이후의 역사만 본다면, 이들이 모두 중국의 사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전 수천 년의 역사를 함께 봐야 한다.
기원전 1000년 이전에 이들 사상의 기반은 이미 다 만들어졌다.
덧붙여, 과거의 진짜 역사는 아무도 모른다.
그 무엇도 단정할 수 없다. 최대한 많은 사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통찰하고 합리적인 유추를 해야 한다.
글을 마치며
위 글을 정리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공맹의 생각과 행동이 깊고 넓다는 것이다.
전쟁이 일상이던 시대의 날선 군주들에게 인륜을 지키라 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인의 시작이라고 하며,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을 의의 시작이라고 하며,
남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을 예의 시작이라고 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을 지의 시작이라고 한다.
또 다른 한 생각은, 아래 문장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All history is contemporary history) [Benedetto Croce].
오늘 여기 있는 나를 빼놓고 역사를 바로 볼 수는 없다.
역사란 결국 나라는 실존에 의하여 해석되는 것이다.
나는 현대사의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놀라웁게도 현대사에 무지하다 [김용옥].
명리학은 생년월일시의 간지에 해당하는 음양오행을 이용하여 사람의 운명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태어나자마자 처음으로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리게 되는데 그때 우주의 기운이 호흡을 통해 아기의 신체에 각인되는 것이다
[고미숙].
사주 팔자의 예:
연
월
일
시
천간
갑 (목)
을 (목)
병 (화)
정 (화)
지지
자 (수)
축 (토)
인 (목)
묘 (목)
오류/수정 사항은 언제든 알려 주세요
이 글은 인터넷 검색/서적 등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정리한 자료이다.
여러 자료를 통찰하고 현대의 과학 지식과 논리에 기반하여 개연성 또는 가능성 있는 발전 과정을 추측하며 작성했다.
잘 모르는 내용은 '?' 표시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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