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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의 공포 '사투르누스 성운'

‘사루르누스 성운’은 UAAA의 한종현 후배가 단톡에 올렸던 사진에 우리가 직접 명명한 이름이다. ‘안타레스 성운 콤플렉스(Antares Nebula Complex)’로 불리는 곳과 그 일대를 이른다.

사진 한종현 고야,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별바라기 홈지기의 “검은 눈의 잘생긴 유령은 뭐야? … 밤늦게 아름다운 사진이다 생각하며 보고 있는데 갑자기 유령처럼 보이는 사람 얼굴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서 순각 좀 오싹했다”는 평이 올라왔고, 곧 이어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눈 두개가 보인다.” 등의 댓글들이 달렸다. 난 고야의 그림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떠올렸다.

위 사진을 비교해 보자. 사진의 위쪽 화려한 안타레스 구역 위에서 시작되는 작고 어두운 부분들이 그 아래쪽에 펼쳐지는 무수한 별 밭으로 향하면서 마치 두 세 개의 검은 강물처럼 흐르는 형상이 보이지 않은가. 이 모습에서 사투르누스의 두 눈, 먹히는 자의 밝은 몸체와 핏빛, 그리고 사투르누스의 팔과 두 다리의 모습이 일순간 겹쳐보였다.

공포와 엽기 -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스페인의 거장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의 작품이다. 고야는 50대 문턱에서 귀머거리가 되었고 곧이어 가장 큰 성취(궁정 수석화가)와 동시에 가장 큰 절망을 경험하게 된다. 어두운 주제와 비판적 암시가 강한 그림을 점점 더 많이 그리게 되며, 말기에는 아예 집안에 틀어 박혀 실내 벽 사방에 이와 같이 어둡고 잔인한 그림들을 직접 그려 넣는다. 바로 14점의 일명 “검은 그림들(Black Paintings)”이라 불리는 작품들로 《사투르누스》는 그 중 한 작품이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고야는 이 그림을 사투르누스라 칭한 적이 없다. 그의 사후에 붙여진 제목이다. 이 그림을 둘러싼 해석과 이야기도 다양하다. 한 미술학자는 푹 늘러진 시체의 풍만한 엉덩이와 다리 모습에 주목하며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상세한 해석들은 생략하나, 이 인물이 진짜 사투르누스든 아니든 이 그림은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당시의 불안한 정세와 전쟁, 권력과 성에 대한 과도한 욕망, 세대 간 갈등, 병들고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알레고리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사람을 잡아먹고 있는 이 장면이 바로 식당의 정면 벽에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 그림 앞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고야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더욱 으스스해진다. 그야말로 엽기적인 장면이 아닌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존재와 사회의 비극성을 한계까지 밀어 붙여 가시화하고 이를 대면하는 고야의 광기에서, 오히려 이성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날카로운 통찰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공포와 축제, 아름다움

다섯 자식을 족족 삼켜버렸음에도 사투르누스는 결국 예언을 피할 수 없었다. 부인 레나가 탈출시킨 막내아들 제우스에 의해 결국 쫓겨나 이탈리아로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고, 그 곳에서 농업 기술을 전파하게 된다. 따라서 로마의 시민들에게는 가장 가깝고 중요한 신의 하나가 되었으며, 매년 농사철이 끝나는 12월에는 그를 기리는 ‘사투르누스의 축제(Saturnalia)’가 열렸다. 3~7일 간에 걸쳐 열렸던 축제에는 남자와 여자, 주인과 노예, 어른과 아이 모두 평등한 자유를 누렸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먹고 마시며 쾌락에 빠졌다고 한다. 훗날 크리스마스가 이 축제를 대체한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사투르누스는 얼핏 생소한 이름으로 들리기도 하나, 바로 ‘새턴(Saturn)’의 어원으로 우리의 일상에서 참으로 가까운 존재이다. 토성의 날이 바로 토요일(Saturday)이 아닌가. 직장인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 날! 바로 휴식과 축제가 시작되는 주말의 첫날이다. 이처럼 사투르누스는 큰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축제와 토요일의 기원이기도 하다. 사진 속을 들여다보면, 특히 위쪽은 마치 트리를 밝히는 색색의 조명이 베일에 비추어져 있는 것처럼 다채롭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북반구에서 한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의 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휴식은 노동이 있기에, 삶은 죽음이 있어 공포 속에서도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아닌가.

사투르누스 성운의 구성

이곳이 바로 사투르누스 성운의 오른쪽 즉 사투르누스의 얼굴과 상체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크게 5각형을 이루며 그 꼭지점을 이루는 천체들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다섯 무리는 꽃잎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어 ‘불가사리 꽃(Starfish Flower)’이라고도 부르고 싶은 곳이다.

1. 안타레스(Antares)와 안타레스 성운(Antares Nebula)

전갈자리의 심장인 알파별로 1등성이자 지구에서 약 550광년 떨어져 있는 적색거성. 육안으로는 한 개의 별로 보이나 실제로는 쌍성이다. 죽어가고 있는 별로 가스와 먼지를 방출하며 팽창하고 있는 부분은 노오란 빛의 성운을 형성하고 있다. 안타레스의 어원은 붉은 행성이자 전쟁의 신인 화성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어로 ‘아레스(Ares, 화성)’의 ‘반대/대척(Ant-)’ 즉 ‘화성의 대적자’라는 의미이다.

2. M4

너무도 유명한 5.63등급의 밝은 구상성단. 사진에서 안타레스는 식상한 비유이지만 큰 다이아몬드인 마냥 광채를 내뿜고 있으며, M4는 잘디잔 다이아몬드 가루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구슬같다.

3. 전갈자리 시그마와 Sh 2-9

전갈자리의 시그마별인 Al Niyat(2.9등급)와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붉은 성운. 반사 성운이자 발광 성운이며, ‘Sharpless 2-9’로도 알려져 있다.

4. IC 4603

전갈자리에 붙어 있지만 실제 뱀자리에 속한 푸른 반사 성운. 중앙의 밝은 별 때문에 성운이 흰 빛으로 보이곤 한다. 아래에 설명할 ‘뱀주인자리 로 성운’(6.)의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5. IC 4605

안타레스에서 약 1.4도 북쪽에 위치한 작은 반사 성운. 중앙에 있는 전갈자리 요타 별(i Sco) 때문에 밝게 빛나며 약 4.7 등급으로 작은 쌍안경으로도 관측가능하다.

6. IC 4604와 뱀주인자리 로 성운 콤플렉스(Rho Ophiuchi Cloud Complex)

'뱀주인 로(Rho)'를 이루는 밝은 별 3개를 둘러싼 성운 콜플렉스. 암흑 먼지와 컬러플한 성간가스가 드라마틱하게 뒤엉켜 있는 곳이며, IC4604는 IC4603의 위로 넓게 뻗어가는 푸른색 반사성운이기도 하다. 새로운 별드의 탄생지로서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대상 중 하나로 약 540년 광년 거리에 있으며, 아래의 이미지는 종종 놀라운 이미지를 선사해오는 제임스 웹 망원경의 1주년 기념사진이다.

에필로그: 시간의 신 (사투르누스 = 크로노스)

사투르누스 즉 크로노스의 그리스어 뜻은 바로 ‘시간’이다.

학부 시절, 초여름 저녁이면 산등성이에서 슬금슬금 진짜 기어 올라오는 것 같던 전갈자리는 유난히 우리의 눈과 상상력을 사로잡는 별자리였다. 헤라 여신 또는 아폴론이 전갈을 시켜 사냥꾼인 오리온을 죽였다는 신화가 전한다. 그 공로로 별자리가 되었으되, 겨울철의 오리온에게는 철전지 원수이기에 밤하늘 정반대편에 놓였다는 이야기는 동아리 신입생들이 처음 들어오면 해주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견원지간 별자리들의 주인공은 각각의 적색초거성이자 1등성인 안타레스와 베텔기우스이다.

안타레스 부근이 여름 은하수의 화려한 지역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으나, 그 시절 이러한 사진은 본 적이 없었다. 너무도 익숙한 곳이라 여겼던 곳에서 마주한 너무도 낯선 형상과 생경한 아름다움이었다. 학부시절을 온통 채웠던 별의 꿈만 간직한 채, 그 후 관측에는 등을 돌렸던 긴긴 시간이었다. 그러다 몇 년 전 옛 폴라리스와 UAAA의 선후배들과 다시 조우하며 때로는 시간을 거스른듯한 격의 없음과 한 마음을 때로는 20여년의 세월이 바꾸어놓은 변화와 약간의 서먹함 속에서 다시 별을 향한 항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낚여 글까지 쓰게 될지는 몰랐다^^

참고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고야, 캔버스에 유채, 146 x 83 cm, 1820~1824년,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이 작품은 벽에서 떼어내져 지금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6년 개기일식이 마드리드 바로 위쪽으로 지나가니 개기일식 여행을 꿈꾸는 이가 있다면 이 그림을 비롯해 유수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프라도 미술관도 일정에 꼭 체크해놓자.

글 김진아

별바라기 활용법

  1. 범용 도구 모음에서 '심우주 사진'을 선택한다 (카메라 모양 아이콘).
  2. 팝업된 다이로그에서 '사투르누스 성운'을 선택한다.
  3. '성도에서 찾기 (Goto)' 버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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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변경: 2024년 05월 23일